MEDNOMICS

두 개의 차트 · EP.01 · 2026. 10. 31

간납사 금지법: 병원 구매의 숨은 통로

대학병원 간납사들이 줄줄이 팔리고 있습니다. 법이 없애려는 것은 통로일까요, 아니면 통로의 주인일까요.

스텐트, 카테터, 인공관절, 수술 도구. 큰 병원 수술방에서 쓰이는 치료재료는 대부분 제조사에서 병원으로 곧장 가지 않습니다. 중간에 '간납사'라고 불리는 간접 납품 회사를 거칩니다. 병원마다 사실상 정해진 간납사가 하나씩 있고, 제조사나 대리점은 그 문을 통과해야 물건을 넣을 수 있습니다.

올해 이 간납사들이 인수합병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의 간납사는 5월에 팔렸고, 서울성모병원 등 가톨릭중앙의료원 쪽 간납사들은 7월에 사모펀드 계열 회사로 넘어갔습니다. 서울아산병원도 간납사 지분 51%를 팔겠다고 공고했습니다. 이유는 하나, 2027년 말 시행되는 개정 의료기기법입니다.

주가 차트 쪽에서 보면: 무엇이 바뀌나

2025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의료기기법은 의료기기 판매업자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의료기관에 물건을 파는 것을 막습니다. 직접 파는 것뿐 아니라 다른 업체를 중간에 끼워 우회하는 것도 금지 대상입니다. 특수관계의 기준은 병원 개설자와 2촌 이내 친족인 경우, 지분을 50% 넘게 가진 경우, 지분과 상관없이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입니다. 위반하면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고, 시행일은 2027년 12월 31일입니다.

그동안 많은 간납사의 대주주는 병원 재단이나 병원 오너의 친인척이었습니다. 병원이 물건을 사면서, 그 중간 마진을 병원 쪽 사람이 가져가는 구조였던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이 중간 수익이 보통 10~20%, 많게는 40%에 이른다고 보고 '통행세'라고 불러 왔습니다. 의약품 쪽에는 이미 약사법에 비슷한 규제가 있었는데, 이번에 의료기기로 넓어진 것입니다.

숫자 하나가 이 구조를 잘 보여 줍니다. 세브란스의 간납사였던 에비슨케어는 지난 회계연도 매출 229억 원에 영업이익 216억 원을 냈다고 보도됐습니다. 매출의 90% 넘게 이익으로 남는 회사는 물류 회사라기보다 수수료를 걷는 창구에 가깝습니다. 이 회사는 대웅제약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이지메디컴 측에 넘어갔습니다.

지금까지의 거래 (2026년 7월 보도 기준)

세브란스 에비슨케어 → 이지메디컴 측 (5월) · 가톨릭중앙의료원 오페라살루따리스·밸류프로 → 서브원 (7월) · 서울아산 메디굿파트너스 지분 51% 매각 착수 · 순천향 동하메디칼, 아주대 대아, 을지대 토탈메디칼, 동국대 정진코퍼레이션 등 잠재 매물로 거론.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이미 규제 대상이 아닌 구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자 차트 쪽에서 보면: 수술방에서 보이는 것

수술을 하는 의사는 어떤 재료를 쓸지는 고르지만, 그 재료가 얼마에, 누구를 거쳐 들어오는지는 거의 모릅니다. 의사에게 보이는 것은 원내에 등록된 재료 목록과 수술 당일 준비된 물건뿐입니다. 새로운 기구를 써 보고 싶어도 병원 구매 절차와 간납사 경로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수술방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간납사 문제는 의사에게 가격 문제이기 전에 '선택지' 문제입니다. 중간에서 떼는 몫이 크면 그 부담은 결국 누군가가 집니다. 덩치가 큰 다국적 제조사는 버틸 수 있지만, 마진이 얇은 국내 중소 제조사와 대리점은 그 문턱에서 먼저 지칩니다. 대금을 몇 달씩 늦게 받는 관행까지 겹치면 더 그렇습니다. 이번 개정법에 대금을 6개월 안에 치르도록 하고 늦으면 이자를 물리는 조항이 함께 들어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술방에서 볼 수 있는 재료의 폭은 이런 유통 구조 위에서 정해집니다.

기사에는 대학병원 이름만 나오지만, 이 구조가 대학병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보아 온 척추·관절 전문병원들에서도 간납사가 병원 쪽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개정법이 막는 특수관계는 친족, 지분, 지배적 영향력입니다. 가까운 지인이 따로 지분을 갖고 경영하는 회사라면 서류상으로는 규제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법의 그물이 대학병원 재단의 지분은 잡아내도, 중소 전문병원의 인간관계까지 잡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간납사 개혁의 성패는 결국 수술방 선반에 놓이는 재료가 더 다양해지고 더 합리적인 가격이 되는지로 판가름 날 것입니다.

두 차트를 겹쳐 보면: 통로는 남고 주인만 바뀐다

눈여겨볼 점은 법이 간납사라는 통로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병원 쪽 사람이 지분을 50% 미만으로 줄이면 거래는 계속됩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통로의 폐쇄가 아니라 주인 교체입니다. 병원 재단은 지분을 팔아 목돈을 쥐고, 사모펀드와 대형 유통 회사는 대학병원이라는 확실한 고객을 손에 넣습니다.

이 흐름이 이어지면 병원별로 흩어져 있던 80여 곳의 간납사가 몇 개의 대형 사업자로 모일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에도 병원 구매를 대행하는 GPO라는 회사들이 있지만, 이들은 구매, 물류, 재고 관리처럼 실제 서비스로 돈을 법니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역할에 머물던 국내 간납사가 이렇게 진짜 서비스 회사로 바뀐다면 병원과 제조사 모두에게 이득일 수 있습니다.

반대의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덩치가 커진 간납사는 제조사에게 더 강한 구매자가 됩니다. 현장에서는 벌써 지분율을 조정하거나, 병원끼리 서로의 간납사를 이용해 주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통행세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과 주인만 바뀝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

첫째, 서울아산병원 메디굿파트너스를 누가 가져가는지. 둘째, 대형화된 간납사가 실제로 물류와 재고 관리 서비스를 늘리는지, 아니면 수수료만 유지하는지. 셋째,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와 시행령이 우회 거래를 얼마나 막아 내는지. 넷째, 국내 중소 의료기기 회사들의 대금 회수 기간이 실제로 짧아지는지입니다.

간납사 이야기는 병원이라는 거대한 구매자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 주는 창입니다. 다음 회에서는 이 창을 조금 더 넓혀, 병원과 같은 뿌리를 둔 제약사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닥터조단

참고한 자료

한국경제, 「병원 물류 지각 변동…전국 수십 개 간납사 M&A 매물로」 (2026. 7. 22)
비즈한국, 「이지메디컴 "258억 투입한 신설법인은 에비슨케어 인수용 SPC"」
메디칼타임즈, 「개정 의료기기법, 특수관계인 거래 금지 왜?」 (2026. 1. 19)
코메디닷컴, 「의료기기 유통 비리 규제 법 통과했지만… "허점 여전"」
의약일보, 간납업체 지분 정리 관련 보도

이 글은 공개된 보도를 바탕으로 한 산업 해설이며,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거나 팔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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